1000억원대 주식 부자의 귀거래사(歸去來辭)
1000억원대 주식 부자의 귀거래사(歸去來辭)
  • 박응식 기자
  • 승인 2018.11.20 07:1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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벤처사업 성공으로 2000년 주식부자 82위 등극
인생 자체가 한 편의 드라마
6차 산업으로 인생 2모작 성공
"성공과 실패 모두 경험해서 미련은 없다"
충북 충주에 있는 블루베리 농장 (주)영지원 대표 신동환씨

“인간사에는 안정된 것이 하나도 없음을 기억하라. 그러므로 성공에 들뜨거나 역경에 지나치게 의기소침하지 마라”

고대 희랍의 대철학자 소크라테스의 말이다. 성공도 시련도 지나가는 한 줄기 바람처럼 여기라는 철인의 가르침이 아닐 수 없다.

40대 초반에 성공한 IT 벤처 사업가에서 50대에 블루베리 농장주로 변신한 신동환 ㈜영지원 대표를 통해 인생2모작의 진정한 의미를 찾아보기로 한다.

블루베리는 내 운명

㈜영지원은 충북 충주시 수안보면에 위치한 블루베리 농장으로 농림산업축산식품부로부터 농촌융복합산업(6차 산업) 인증을 받은 농업회사법인이다. 이 회사를 운영하는 신동환 대표는 서울에서 벤처 사업가로 성공가도를 달리다, 2012년 52세의 나이에 고향인 충주로 귀농해 6년차 농부로 살고 있다.
 
평균적인 은퇴자들보다 다소 이른 50대 초반에 귀농을 결심하게 된 것부터 어떤 사연이 있지 않을까 싶었다.

“60세가 되면 귀농할 계획을 가지고 있었는데 그 계획이 예상보다 조금 일찍 실현됐습니다. 벤처 사업을 할 때 여윳돈이 있어 이곳에 임야를 매입해서 언젠가 고향으로 돌아오려고 생각을 하고 있었죠. 그런데 임야를 관리하던 아버님이 갑자기 돌아가시면서 귀농을 서두르게 됐습니다.”

평소 시력이 좋지 않았던 그는 서울에서 사업을 할 때부터 대형마트에서 수입산 블루베리를 사서 먹곤 했다. 블루베리를 먹고 몸으로 효능을 느끼기 시작하자 인터넷으로 블루베리를 공부하기 시작했다. 마침 월악산 자락 수안보면에 마련했던 별장형 농장에 빈 땅이 있어 블루베리 묘목을 사서 심었다. 처음에는 별 생각 없이 시작했다. 2010년 봄의 일이다.

경기도 북쪽에 있는 대형 블루베리 농장을 찾아가 그간 공부한 것을 바탕으로 2년생 블루베리 묘목 1500주를 매입했다. 봄에는 피트모스에 왕겨를 섞어 부친과 함께 전부 분갈이를 하고 가을에는 화분에서 키운 블루베리 묘목들을 농지에 옮겨 심는 작업을 마쳤다.

“공부는 했지만, 초보 농사꾼인지라 이 작은 묘목들이 그 추운 겨울을 잘 버틸까, 죽지는 않을까 겁이 나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어느 순간 나무 밑둥에서 물이 올라오고 새싹이 트고, 나무 전체가 잎으로 덮이더군요. 신기하면서도 재미있었습니다. 역시 자연은 위대하다는 깨달음을 얻었습니다.”

2011년 봄 자연 속에서 희열을 맛본 신 대표는 그해 여름 열심히 땀을 흘렸다. 멀리서 공부하는 아들과 딸까지 내려와서 일을 도왔다. 그러던 중 그해 가을 부친상을 당했다.

“아버님이 떠나신 후 농장 관리를 할 사람이 없어서 직접 내려가기로 결심을 하게 됐습니다. 귀농 신청을 하고 그동안 살던 분당을 떠나 수안보로 왔습니다. 이후 농장관리에만 전념을 하고 농업전문대학도 다녔습니다.”

묘목이 자라 5년차 성목이 되는 2013년 여름에 그는 처음으로 블루베리 0.5톤을 수확했고 이를 지인들에게 전량 판매했다.

6차 산업에 답이 있다

그는 이듬해인 2014년부터 블루베리 수확 체험객이나 농장 방문객들을 위한 휴게시설 및 투숙시설을 마련하는데 힘을 쏟았다. 카페와 게스트하우스가 마련되는 계기를 이때 만들었다.

농장 내에 있는 카페 ‘베로나’는 하얀 벽면에 스페인식 기와를 얹은 지중해풍의 건물로 지어졌다. 월악산의 아름다운 자연과 함께 따뜻한 커피향을 즐기며 잠시나마 일상에서 벗어나 쉴 수 있는 공간이 됐다.

“농사는 ‘하나님과의 동업’이 가장 어렵다고 합니다. 즉 날씨나 기후가 도와주지 않으면 인간의 노력만으로 이뤄지는 것이 별로 없다는 뜻입니다. 변수는 날씨 뿐만이 아닙니다. 어느 해는 병균 때문에 또 다른 해에는 가격이 폭락하는 등 이루 헤아릴 수 없습니다. 일년 내내 배추 농사 지어서 가을에 배추밭을 갈아엎는 모습을 많이 봤습니다. 농사가 얼마나 어려운지를 이곳에 와서 비로소 알았습니다.” 

신 대표가 카페를 만들고 게스트하우스를 짓는 등 시설 투자에 돈을 아끼지 않은 것은 6차 산업으로 승부를 보겠다는 포석 때문이었다. 그는  귀농 6년 만에 괄목할 만한 성과를 이룩했다. 방문객 수는 2015년 4000명이던 것이 2017년 8000명으로 늘었고, 매출도 1억원에서 3억원으로 늘었다.

짧은 기간에 블루베리 사업이 궤도에 오를 수 있었던 이유가 궁금했다.

“저는 귀농 교육을 받을 때부터 6차 산업에 주목했습니다. 1차 산업 형태로 블루베리 생과만 판매해서는 일정한 소득을 유지하는 것이 어렵겠다는 판단을 했던 것이죠, 블루베리를 재료로 가공식품을 만들어 판매한다면 계절과 상관없이 매출을 올리는 것이 가능하다고 본 것입니다”

그가 자랑하는 블루베리 가공 제품으로는 블루베리 효소와 블루베리 수제잼이 있다. 특히 손으로 으깬 블루베리를 최소 2시간 반 동안 장작불로 가열한 가마솥에서 끓여 낸 ‘가마솥 장작 수제잼’이 대표적인 상품이다. 블루베리 100% 수제효소와 전통방식으로 만든 수제잼 등은 기업체 단체 선물이나 명절 선물용으로 판매하고, 농장을 체험하기 위해 방문한 사람들에게도 판매한다.

그러나 신 대표가 가장 심혈을 기울인 대목은 블루베리 농장을 광광농원으로 만든다는 전략이다. 예를 들면, 블루베리를 수확하는 체험을 제공하는 것이다. 체험객으로는 4세에서 7세까지 어린이들이 많다. 6~7월에 농약 한번 사용하지 않고 재배한 블루베리를 어린이들이 직접 딸 수 있는 체험으로 매출을 늘리고 있다. ​카페에서는 다양한 블루베리 음료와 커피, 스파게티를도 판매하고 있다.

그가 요즘 들어 특히 관심을 기울이는 지점은 ‘자작나무숲’ 프로젝트다. 우선 2만평의 산을 벌목해서 4만주의 자작나무를 심고 있다. 2.5km의 자작나무 숲길을 조성하는 계획인데, 충주시와 협의해서 6km까지 구간을 넓힌다는 구상을 갖고 있다. 봄에는 자작나무에서 수액을 채취해서 마스크팩 공장에 납품을 함으로써 부가적인 수입도 창출한다는 복안이다.

“사람들이 꼭 와보고 싶은 관광타운으로 만들고 싶습니다. 자작나무숲길이 조성되면 강원도 인제 원대리 자작나무 숲에 이어 중부 지역 최대 자작나무 사유림을 확보할 계획입니다. 이 곳에 힐링센터를 만들려고 합니다. 레스토랑도 운영하고 작은 음악회도 열 생각입니다.”

2000년 주식부자 82위

IT 벤처분야에서 청춘을 바친 신 대표가 농업에서도 일정한 성과를 올린 것은 그의 풍부한 사업 경험이 밑받침이 됐다. 문득 그의 과거가 궁금해졌다.

그는 우리나라 벤처기업인의 산실이라고 할 수 있는 인하대 전자공학과 78학번 출신이다. 벤처업계를 대표하는 조현정 비트컴퓨터 회장, 국회의원을 지낸 전하진 전 한글과컴퓨터 사장들과는 비슷한 시기에 대학을 다녔다. 그 외에도 황철주 주성엔지니어링 대표 등 인하대 전자공학과 출신으로 벤처1세대를 대표하는 기업인들은 수도 없이 많다.

신 대표는 대학을 졸업하자마자 군대를 면제받고 24살에 바로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삼성전자에서 6년, LG상사에서 4년을 근무했다. 공대 출신이지만 연구 개발보다는 기술 영업에 관심이 더 많았다. 10년 동안의 직장생활을 마친 그는 1992년 34살의 젊은 나이에  ‘웰링크’라는 초고속 데이터 전송장비 회사를 창업했다.

“꿈이 많았습니다. 대기업에서 샐러리맨으로 남기 보다는 창업을 해서 승부를 보자는 마음이 강했습니다. 1990년대는 휴대폰이 도입되고 인터넷이 새로 등장하는 등 국가적 차원에서 통신망을 넓혀가던 시절이라 사업이 매우 순조로웠습니다.”

초고속통신 장비들을 대부분 해외에서 수입하던 시절, 신 대표가 설립한 웰링크는 고속채널 데이터 전송장치(CSU)의 국산화 성공 이후 고속디지털가입자망(HDSL) 장비와 원거리 고속데이터 통신단말기(FDSU)를 잇달아 출시해 시장을 선도했다. 독보적인 기술력으로 50%에 육박하는 시장점유율을 유지하는 등 고속 데이터 전송장비 분야에서 가장 앞서 나갔다. 창업 후 2년이 지나면서 회사는 급성장하기 시작했다.

“특히 PC방이 전국적으로 확산되던 시절이라 통신장비 시장이 급격하게 성장했습니다. 비대칭형 통신(ADSL), 전용망, 휴대폰 보급, 증권전산 네트워크 등 사업에 호재가 넘치던 시절이었죠.”
1997년 IMF 외환위기가 닥쳐왔지만 신 대표의 웰링크는 흑자 기조를 유지하고 성장세는 멈추지 않았다. 그리고 1999년 12월에 꿈에 그리던 코스닥 상장을 이뤄냈다. 

“상장 당시 통신 네트워크 대장주로 불렸습니다. 상장 후 한 달 내내 상한가를 기록했어요.  3만9000원에 시작한 주식가격이 30만원대로 급상승했습니다. 한창 때는 시가총액이 7000억원을 기록했고, 저의 개인 재산(주식평가액)이 1000억원을 넘었습니다.”

재벌닷컴 발표 자료에 따르면 신 대표는 2000년 1월 2일 기준으로 100대 상장 주식부자 가운데 82위(519억원)를 차지하기도 했다. 이건희, 정주영 등 당시 재벌 총수들과의 순위 경쟁에서 100등 안에 들었던 것이다. 40대 초반에 자수성가한 젊은 벤처인으로서는 눈부신 성공을 이뤘다는 평가를 받기에 충분했다.  

불운의 끝은 어디인가

폭주 기관차처럼 계속될 것 같았던 그의 성공신화에 2001년 서서히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우기 시작했다.

“웰링크는 2000년 기준으로 매출액이 1500억원을 기록했습니다. 당시만 해도 네이버 등 소프트웨어 업체들은 따라오지도 못했어요. 그러다 2001년부터 하드웨어 시장이 급격하게 나빠졌습니다. 정점을 찍었다고나 할까요. 고속도로에 비유하면 이해가 빠를 것입니다. 고속도로가 다 깔리고 나면 유지 보수 외에는 특별히 새로운 사업이 없으니까요.”

엔지니어링 세일즈맨이던 그는 세상 일에 관심이 많았다. 벤처 광풍이 불던 그 시절에 회사를 10개씩 인수하기도 했다. 벤처 열기가 꺼지면서 투자한 사업체에서 모두 쓰라린 실패를 맛봤다. 특히 주력 회사인 웰링크의 하락세는 치명적이었다.

“갑자기 돈을 너무 많이 벌었습니다. 김대중 정부 시절 벤처업계에 버블이 많긴 했지만 그 돈이 다 내 돈인 줄 알았습니다.”

그에게 가장 뼈아픈 실패는 부동산 시행사업이다. 분양까지 마친 상태에서 공사 현장의 지반이 붕괴했다. 도로 붕괴로 사상자가 발생하고 공사현장의 옆 건물도 벽에 금이 가는 등 2년 계획의 공사가 4년이나 걸렸다. 그 과정에서 계약은 전부 해지됐고, 계약금 및 중도금을 2배로 물어줘야 했다.

“멱살을 잡히고 고소를 당하고, 심지어 깡패를 동원해서 협박을 하는 사람들까지 있었습니다. 결국 버티다 못해 2005년에 웰링크를 매각했습니다. 주가가 떨어진 상태에서 회사를 매각하고 나니 60~70억원이 남았습니다. 그리고 2~3년 동안 엄청난 고통이 있었죠. 국세청 세무조사, 금감원 조사 등을 당해야 했으니까요.”

신 대표는 웰링크 매각 이후 2006년부터 RFID 사업에 뛰어들었다. 돈을 많이 투자했다. 그러나 너무 빠른 그의 사업감각이 오히려 화근이 됐다. 결국 다시 실패를 했다. 방황을 하던 그가 다시 사업에 손을 댄 것은 2008년에 시작한 전자칠판 사업. 정부도 이 분야를 육성하고 있던 시기라 사업 역시 잘 됐다.

2010년까지 회사도 급성장했다. 시장 규모가 커지면서 삼성 LG등 대기업이 전자칠판 시장에 뛰어들었다. 결국 15개의 전자칠판 중소기업은 모두 망하고 말았다. 그가 서둘러 귀향을 결심한 배경에는 더 이상 돈을 잃어서는 안 된다는 절박함이 있었다.

흙에서 배우는 삶의 지혜

돌고 돌아 고향 충주에서 농부로 제2의 인생을 살고 있는 신동환 대표. 그는 요즘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벤처 업계는 변화가 빠르죠. 하루가 다르게 새로운 기술이 등장하고, 기업들도 변화에 적응하지 못하면 순식간에 사라지는 곳이기도 합니다. 반면에 농촌은 느리게 가는 곳입니다. 사람의 능력도 중요하지만 햇볕과 비, 바람 등 자연이 조화를 부려야만 결실을 맺을 수 있습니다. 그동안 저는 원 없이 일을 했습니다. 투자도 해봤고 성공도 했습니다. 그리고 참담한 실패도 맛봤습니다. 제 인생 자체가 한 편의 드라마인 셈이죠. 이제는 마음을 비우고 땀 흘려 키운 블루베리로 이웃과 함께 소박하게 살아가는 것에 목표를 두고 있습니다.”

말은 담담하게 했지만 신 대표의 입술에서 강한 의지와 결기가 느껴졌다. 6차 산업에서 성공한 롤 모델이 되겠다는 결연함 같은 것을 읽을 수 있었다.

베이비 부머 세대들의 은퇴가 본격화됨에 따라 귀농 귀촌 열풍 역시 만만치 않은데 그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말은 없는지 물었다.

“전략적으로 고민하고 충분히 준비하지 않으면 성공하기 어렵습니다. 특히 6차 산업을 염두에 두고 미리 공부할 것을 권합니다. 각 지방자치단체별로 운영하는 6차산업지원센터를 활용하기 바랍니다. 농사는 생각만큼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러나 준비하고 노력하는 자가 보상을 받는다는 것은 믿으셔도 됩니다.”
 
충북 충주시 수안보에서 영글어 가고 있는 신동환 대표의 꿈이 어떤 결실을 맺을지 궁금하다. 아마도 하늘을 향해 곧게 뻗어가는 자작나무가 그 꿈을 현실로 펼쳐 보여줄 것으로 기대를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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