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얻은 깨달음"...박생규 '신나는조합' 전문위원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얻은 깨달음"...박생규 '신나는조합' 전문위원
  • 박응식 기자
  • 승인 2018.12.27 06:3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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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년의 군 생활은 인생1막, 10년의 대기업 임원 생활은 인생2막
인생3막은 63세에 사회적 기업에서 시니어 인턴으로
박생규 '신나는조합' 전문위원

“뮤지션에게 은퇴란 없대요. 음악이 사라지면 멈출 뿐이죠. 제 안에는 아직 음악이 남아 있어요.”

2015년 국내에서 개봉된 영화 '인턴'에서 70대 시니어 인턴 ‘벤’ 역할을 맡은 로버트 드니로가 30대 여성 CEO ‘줄스’(앤 헤서웨이 분)에게 하는 말이다. 정년퇴직 후 자신에게 필요한 것은 휴식이 아니라 일이라고 판단해 인턴 생활을 시작한 영화 속 로버트 드니로는 인생 2모작을 고민하는 이 시대 중년들의 롤 모델이다.

영화 '인턴'이 곧 나의 삶

영화 속으로 한 걸음 더 들어가 보자. 전업주부로 지내다 창업에 성공해 1년 반 만에 직원 220명을 거느리게 된 줄스. 그녀 앞에 나타난 노신사 벤은 줄스의 멘토 역할을 하며 젊은 여성 CEO의 고민을 해결하는 데 도움을 준다. 쓰레기 더미와도 같은 책상을 치우기도 하고 젊은 직원들과 격의 없이 어울리며 친화력을 발휘하는 주인공을 보면서 진짜 어른은 어떠해야 하는지를 깨닫게 해준다.

영화 속 로버트 드니로와 같은 남자를 대한민국의 현실에서 만난다면? 지난해 2월부터 '사단법인 한국 마이크로크레디트 신나는조합(이하 ‘신나는조합’)'에서 전문위원으로 일하고 있는 박생규 씨(66)가 그 주인공이다. 단정하게 빗은 머리, 탄력 있는 피부와 건강미 넘치는 체격을 보자니 청년이 부럽지 않다. 그는 재취업을 원하는 중장년층 지원자를 사회적기업에 연결하는 일과 프로보노 활동을 희망하는 지원자들을 사회적기업에 소개하는 일을 주로 하고 있다.

프로보노는 각 분야의 전문가들이 자신의 전문성을 활용해 사회적 약자와 소외계층을 돕는 활동을 의미한다. 이는 ‘공공의 이익을 위하여’ 라는 뜻을 가진 라틴어 ‘pro bono publico’에서 나온 용어다. 일반적으로는 봉사활동, 재능기부 등의 뜻으로 쓰이기도 한다.

“은퇴자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말이 있습니다. 우선 경제적 이해득실을 따지지 말고 봉사 활동에 나서기를 권합니다. 봉사 활동을 통해서 뜻하지 않게 자신의 적성을 파악할 수도 있고 때로는 그 활동이 직업이 되기도 하니까요.”

대장암이 안겨준 삶에 대한 깨달음

박생규 전문위원 역시 2012년에 순수한 마음으로 시작한 봉사활동이 직업으로 발전했다. 다만, 그 과정에는 드라마와도 같은 스토리가 숨어 있다.

그는 48세에 30년의 군 생활을 마감하고 공군 중령으로 예편했다. 이후 현대정보기술과 SK C&C 등 대기업에서 10년 동안 임원으로 활동했다. 그의 표현에 따르면 ‘인생 2막’인 셈이다.

그런데 59세가 되던 2011년,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위기가 찾아왔다. 대장암 3기 판정을 받은 것이다. 수술을 받고 극심한 고통이 수반된 6개월의 항암 치료기간을 강한 정신력으로 버텨냈다. 대기업에서도 물러나면서 다시 인생의 전환점을 맞았다.

“병상에 누워 있으면서 많은 생각을 했습니다. 지나온 삶을 돌이켜 보니 저는 국가나 사회로부터 혜택을 많이 받은 사람이라는 깨달음이 오더군요. 요즘처럼 취업이 힘든 것도 아니었고 그렇다고 조기 퇴직을 걱정할 필요도 없었으니까요.”

박생규 '신나는조합' 전문위원

박 위원은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자신이 받은 혜택을 사회에 되돌려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만약 다시 삶을 영위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다면 한 손은 남을 위해서 사용하고, 다른 한 손은 자신을 위해 쓰겠다는 간절함을 담아 신에게 기도했다고. 따뜻하고 아름다운 사회를 만드는데 일조할 수 있다면 그 어떤 일도 하겠노라고 말이다.

그는 항암치료가 끝나기도 전에 봉사활동에 나섰다. 개인적인 욕망을 추구하는 삶에 대한 집착과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떨쳐버렸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의 표현대로 ‘인생 3막’이 시작된 것이다.

그는 서울산업진흥원(SBA)의 '희망설계아카데미'를 찾았다. 희망설계아카데미는 시니어의 경험과 노하우를 살려 창업기업의 멘토로 활동할 전문가를 육성하는 프로그램이다. 교육과정을 이수하고 IT 분야의 창업과 기술 자문 상담사로 봉사하게 되었다. 서울시 청년창업 지원 프로그램의 멘토로 참여하면서 그는 새로운 꿈을 꿨다.

“주니어와 시니어가 모여서 엄청난 시너지 효과를 내는 회사가 생기면 좋겠다는 바람이 있었죠. 그런 회사를 창업하는 데 도움이 되고 싶었습니다.”

시니어 인턴에 도전하다

이 꿈을 좀 더 구체화하기 위해 그는 여러 사회적기업에 문을 두드린 끝에 2015년 8월 '상상우리'에 시니어 인턴으로 입사했다. 우연하게도 영화 인턴이 국내에 개봉된 그 해였다.

상상우리는 퇴직(예정)자들의 인생 2막을 위한 교육, 컨설팅, 멘토링 등을 제공하는 사회적기업이다. 당시 회사 대표는 서른아홉, 나머지 직원들은 대부분 이십 대 많아야 삼십 대 초반이었다. 인턴생활 3개월은 서로를 알아가는 시간이었다. 같은 꿈을 꾸는지, 열정이 있는지, 잘 소통할 수 있는지 맞춰보았다.

“처음엔 직원들이 어려워했죠. 하지만 내가 일할 수 있는 것은 함께하는 어린 동료들 덕분이며, 내가 경험은 많아도 그들이 신기술을 훨씬 잘 안다고 진심으로 인정했습니다. 가르치려 들거나 무시하지 않고 열심히 배워나갔습니다.”

그리고 그해 10월 말에 정식 직원으로 채용되었다.

시니어 인턴으로 들어간 상상우리. 주니어 대표 신철호 씨(오른쪽)와 함께

시니어 인턴의 인적 네트워크와 젊은 창업가의 도전 정신은 시너지 효과를 냈다. 오랜 회사 생활로 얻은 경험과 노하우를 가진 그는 입사하자마자 회사가 안정적으로 성장하는 데 큰 도움을 주었다. 그 결과, 인턴으로 입사하던 2015년 회사 매출은 3억 1,700만원이었으나 다음 해에는 5억 6,500만원으로 크게 증가했다. 직원도 11명에서 17명으로 늘었다.

박 위원이 강조하는 대목이 바로 이 부분이다. 주니어와 시니어가 일자리를 놓고 경쟁하는 것이 아니라 함께 시너지를 낼 수 있음을 보여주고 싶다는 것이다.

“새로 창업한 스타트업 기업은 젊은이들이 주축이 될 수밖에 없고, 따라서 경륜 부족이라는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습니다. 이럴 때 풍부한 경험을 가진 시니어가 새로운 사업을 제안하는 등의 방식으로 힘을 보태게 되면 오히려 주니어들을 위한 일자리를 창출할 수 있어요.”

시니어는 주니어에게 경륜을 보태고, 주니어는 시니어에게 역동성을 제공함으로써 서로 배려하며 함께하는 아름다운 사회를 만들 수 있다고 그는 강조했다.

박 위원은 이와 관련해서 기업에서 시니어가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지 들려주었다.

“시니어는 시키는 일을 하기 보다는 기업의 미래 비전을 고민해야 합니다. 그리고 주니어의 성장을 돕는데 있어서 시니어도 재능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인식해야 합니다. 더불어 1+1은 2가 아니라 그 이상이 될 수 있음을 믿어야 합니다.”

변화를 두려워하지 말고 미래에 도전하라

그는 시니어 인턴으로 일하고 싶어 하는 사람들에게 조언도 아끼지 않는다. 그는 이를 ‘시니어 인턴 5계명’으로 정리했다. 첫째 가르치려 들지 말 것, 둘째 먼저 나서서 도울 것, 셋째 자식 자랑하지 말 것, 넷째 과거의 나에서 벗어날 것, 다섯째 간섭하거나 고집 부리지 말 것.

“시니어 인턴이 실패하는 대표적인 이유 가운데 하나는 경험이 많다는 이유로 후배들을 가르치려 들기 때문입니다. 나는 고용된 사람이라는 자세를 유지해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리고 ‘왕년에 내가 말이야’는 부질없는 소리에 불과합니다. ‘나는 그저 신입일 뿐’이라는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박생규 '신나는조합' 전문위원

'신나는조합'에서 맡은 그의 업무가 프로보노 활동과 관계된 만큼 그는 지금도 봉사활동에 많은 열정을 쏟고 있다.

“봉사활동을 하다 보니 할 일이 참으로 많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사회적기업, 협동조합 등 사회적경제 분야에서 저의 손길을 기다리는 곳이 너무 많아요. 일을 하다 보면 제게 도움을 받는 분들도 기쁘겠지만, 저 역시 더 행복하다고 표현하는 것이 맞을 것입니다. 컨설팅을 하는 과정에서 좋은 사람들을 만나게 되고 때로는 제가 일을 통해서 배우게 될 때도 많으니까요”

그는 봉사활동이 은퇴자는 물론 현재 직장에 근무하는 사람들에게도 매우 유용하다고 말한다. 봉사 활동을 함으로써 자신이 진정 잘 하는 일이 무엇인지 알게 된다는 것이다. 그 과정에서 몸 담고 있는 직장을 변화시키는 것은 물론 인생까지 바꿀 수 있는 계기가 만들어진다고 했다.

박 위원 역시 IT 분야에서 40년 가까이 근무한 경력이 있지만, 프로보노 활동을 통해서 인사 노무 분야에서도 실력을 인정받아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

“잘 아시다시피 군대라는 곳이 복무 기간 동안 젊은이들을 잘 관리해서 사회에 내보내는 조직이니 만큼 인사 노무 관리는 기본적으로 몸에 배어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대기업 역시 큰 조직이니 더 말할 필요가 없지요.”

그는 은퇴를 앞두고 있거나 이미 퇴직한 중장년들에게 이렇게 당부한다.

“변화를 두려워하지 말고 미래를 선택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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